압구정, 청담 등 서울 강남 부촌 주민들의 ‘정모’장소로 이름났던 곳이 있었죠.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5층 식당가인데요.
점심때만 되면 손님들로 넘쳐났던 이곳에서도 정중앙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던 매장이 팥빙수 매장 ‘밀탑’이었죠.

과거 배우 이보영이 한 방송에 출연해 팥빙수 때문에 남편 지성과 싸운 적이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던 그 장소 또한 밀탑인데요.
현대백화점의 매출까지 영향을 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밀탑’ 빙수를 더 이상 그곳에서 맛볼 수 없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단골손님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현대백화점과 아울렛에서만 17개 직영점을 운영하던 밀탑은 지난 11월 매장을 모두 폐점하였죠.
텅 빈 매장을 찾은 손님은 “밀탑 빙수를 먹기 위해 일부러 쇼핑 장소를 현대백화점으로 선택했는데 아쉽다”라며 발길을 돌렸는데요.

밀탑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팥빙수로만 연 매출 120억 원을 찍을 정도로 프리미엄 빙수계의 최고봉이었죠.
특히 한여름에는 주말 대기번호가 999번까지 찍힐 정도로 밀탑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요리연구가 홍신애 씨 역시 “가장 이상적인 빙수”라며 밀탑의 빙수를 극찬했죠.

밀크·녹차·과일·커피 빙수 4가지 메뉴 가운데 밀크 빙수는 손님들의 뽑은 밀탑의 시그니처 메뉴인데요.
다른 재료 없이 얼음, 팥, 연유, 떡 등 최고 품질의 재료만 넣은 밀크 빙수는 강남 부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죠.
밀탑은 빙수에 진심을 다하는데요. 항상 주방에서 팥을 직접 삶았으며 얼음이 씹히지 않도록 부드럽게 갈아 제철 딸기를 냉동해 갈아서 만든 시럽을 넣어 손님들에게 제공하였습니다.

백화점 매장 개편 시즌만 되면 재계약 여부가 백화점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정도로 높은 콧대를 자랑했던 밀탑이었지만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분위기가 180도 변하게 되죠.
‘눈꽃빙수’를 앞세운 설빙 등 전문 빙수 프랜차이즈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신라호텔 또한 애플망고 빙수를 선보이며 밀탑이 선점하고 있던 프리미엄 빙수 업계에 반기를 듭니다.

거기에 아이스크림, 커피 전문점 등에서도 자체 빙수를 고급화시키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죠.
그 결과 밀탑의 매출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는데요.
2015년부터 순손실을 기록하기 시작해 2019년 5억 원의 반짝 순이익을 낸 것을 제외하고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죠.

2015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뒤 악화된 재무구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데요.
한 관계자는 “밀탑의 경영난은 코로나19 영향이 아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라며 밀탑의 현 상황을 전했습니다.
실제 밀탑은 가뜩이나 어려워진 시장 상황에도 무리한 확장과 자금 운용을 하였고 결국 스스로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게다가 경영진의 잦은 교체 또한 밀탑의 쇠락에 한몫을 했는데요.
밀탑 창업주 김경이 씨와 아들 라강윤 씨는 2016년 1%의 지분만 남기고 모든 경영권을 옐로모바일의 자회사인 데일리금융그룹으로 넘깁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인수 후 회생을 위해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2018년 경영권을 유조이그린홀딩스로 넘기죠.

경영권을 두고 여전히 복잡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처지이지만 밀탑은 새로운 시도를 준비 중인데요.
출점 시 자금 부담이 큰 직영 대신 가맹사업 쪽으로 방향을 뜨는 전략적 선택을 감행합니다.
직영 사업은 본사가 제품 품질과 서비스를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지만 인테리어 비용 등 자금 부담이 큰 편이죠.

밀탑은 제주도 서귀포시 담앤루리조트 내 밀탑 제주퍼스트오션점을 비롯해 현재 7개 가맹점을 운영 중인데요.
현대백화점 내 직영점 철수 후 타 백화점과 입점 계약을 완료해 오픈을 계획 중이죠.

‘현대백화점=밀탑’이라는 공식이 깨져 조금은 아쉬운데요.
더 가까운 곳에서 변함없는 밀탑의 맛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