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그 누구보다 침통한 시간을 보낸 건 자영업자 분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2년 넘게 이어진 거리두기와 영업제한으로 결국 폐업을 선언한 소상공인들이 줄을 이었죠. 폐업만은 막겠다며 대출로 연명하던 이들도 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제출한 자영업자 부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09조 원을 넘었는데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2년 새 32%나 급증한 규모입니다.
생존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 유예가 종료되는 9월 이후에는 엄청난 파급이 일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데요.
자영업자의 빚 부담은 금리 인상과 맞물려 한층 더 무거워질 것이라도 전망도 이어졌죠.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의 대출 이자를 낮춰주고 과잉채무를 탕감해 주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정부가 이자를 지원해 저금리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죠.
먼저 고금리 위험에 노출된 비은행권 대출을 은행권 대출로 바꿔주는 정책이 포함되었는데요. 이와 함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 주는 ‘이차보전’을 시행할 예정이죠.
이차보전은 시중은행이 낮은 금리로 대출하면서 발생하는 이자 차이(이차)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 주는 방식을 뜻합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이차보전과 신용보증기금 같은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보증을 모두 제공한다는 계획이죠.

금리 상승기로 전환된 현재 ‘금리 리스크’에 노출된 2금융권 대출 차주의 이자 부담을 덜어 연착륙을 지원한다는 취지인데요.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소상공인이 2금융권에서 빌린 자금이 3조 6000억 원 규모이죠. 해당 지원 방안이 시행되면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 2금융권에서 1억 원을 대출받은 차주가 법정 상한 이자율인 연 20%를 적용받을 경우 연 이자는 2000만 원 수준인데요.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5개 주요 시중은행이 취급한 신용대출 금리는 신용등급 9~10등급 기준 10~12%가량 되죠.

구체적인 방안이나 금리 수준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은행권 대환으로 신용대출 금리 상단인 연 10%가 적용된다면 연 이자 부담은 1000만 원가량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필요한 정책 중 하나라는 평가가 있지만 재원 마련을 위해선 국민 세금 투입이 불가피한 전망인데요.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보증을 서면 당장은 예산이 안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실 가능성이 큰 채권들인 만큼 결국 부도가 나 세금으로 대신 갚아줘야 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책은 대출자는 물론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추길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는데요.

금융사가 부실 가능성이 높은 대출을 정부 지원을 받아 다른 금융사에 넘겨버리게 되면 금융사 스스로 차주에 대한 신용평가와 대출 관리를 성실하게 할 원동력을 잃게 되죠.
또한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해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경쟁력이 떨어져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웠던 자영업자까지 코로나 금융 지원이라는 미명하에 국민 세금으로 연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게 되죠.
기존에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차주와의 ‘역차별’로 불거질 수 있습니다. 한 자영업자는 “어떻게든 빚을 갚으려고 집을 팔고 배달 라이더로 투잡까지 뛰며 버텨왔는데 후회가 된다”라고 통탄하였는데요.

그는 “이제껏 열심히 빚을 갚아온 사람들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라며 정책에 대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부실채권 매입 과정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중은행의 부담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요.
은행 관계자 역시 “어떤 식으로든 민간은행도 부담을 지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다”라며 “부실 채권을 정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갑지만은 않은 방식”이라고 전했죠.
소상공인들의 빚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제의 근간인 소상공인이 흔들리면 우리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요.
인수위가 부디 소상공인과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합리적인 범위에서 빚 부담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슬기로운 지혜’를 발휘해 주었으면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