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의 메카로 불렸던 노량진 상권이 바뀌고 있습니다. 고시촌의 상징이던 컵밥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뚝 끊어졌고, 독서실마저 하나둘 문을 닫았는데요.
공시생이 머물던 고시원 방은 직장인을 겨냥한 원룸으로 바뀌고 있고, 학원과 카페가 있던 상가 건물에도 임대 문의 표시만 남아있죠.
서울 노량진 고시촌 거리는 몇 년 전만 해도 수업을 들으려는 공시생들로 발 디딜 틈 없던 곳이지만 이제는 한적하기만 합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동네였던 노량진의 분위기가 이렇게 180도 달라진 데는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생긴 변화인데요.
지난 2일 실시된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9 대 1로 199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한참 점심을 즐길 시간이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컵밥 가게가 대부분인데요. 주변 상인들 대부분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컵밥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유동인구가 없다. 이제는 옛날의 노량진이 아니다. 다시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최악의 상황이다”라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실제 노량진 대로변에 있는 컵밥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해졌는데요. 컵밥 거리 맞은편에는 ‘임대문의’ 현수막을 걸어놓은 텅 빈 가게가 즐비했습니다. 고시원과 독서실 같은 전통적인 노량진 상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는데요.
노량진에서 10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B 씨는 “최근 2~3년 사이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독서실은 대부분 사라졌다”라고 전했죠.
그는 “독서실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는데요. 대규모 체인형 독서실이 개인 독서실을 대체하고 있지만 그곳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시원 역시 공시생이 줄면서 직격탄을 맞았는데요. 고시원과 원룸에 공실이 늘면서 노량진 일대 월세까지 떨어지는 상황이죠.

노량진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기존에 비해 월세가 7~10만 원 정도 내렸다. 원룸 월세가 많이 낮아져 현재는 고시원이나 원룸 가격이 비슷하다”라고 전했는데요.
이마저도 채우지 못해 고시원의 경우 공실률이 50%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확 바뀐 건 무엇보다 공무원 시험 자체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는 점이 가장 큰데요.
얼마 전 치러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 경쟁률은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았고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죠.
한때 청년들 사이에서 선호하는 직업으로 꼽혔던 공무원은 이제 예전의 명성을 찾아보기 힘든데요. 일반 기업보다 낮은 보수, 경직된 조직문화, 연금제도 개편 등으로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9급 공무원 경쟁률은 2018년 41 대 1, 2019년 39 대 1, 2020년 37 대 1, 2021년 35 대 1로 매년 하락세를 보였는데요.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회조사결과’에서 만 13~34세가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 1위로 ‘대기업’이 뽑히며, 공무원은 2006년 이후 처음으로 1위 자리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해야 했죠.
인사처는 경쟁률 하락의 원인으로 2030세대의 인구 감소와 공무원 연금제도 개편 등을 꼽았습니다.
노량진의 한 독서실 직원 C 씨는 “지난해 말부터 학생들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라며 “책은 그대로 두고 짐을 빼는 걸 보면 더 이상 공무원 준비를 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요.

이어 “공무원이 보수가 적다는 인식도 있고, 정권이 바뀌면서 대거 채용이 없을 거란 생각에 공무원 준비를 꺼리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인사처 역시 9급 공무원 1호봉이 최저 임금을 겨우 넘길 정도로 적은 급여와 과중한 업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원인이 되었다고 전했죠.
또한 젊은 세대들이 안정성 대신 자아실현 등 다양한 가치를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전통적인 인기 직종이었던 공무원의 선호도가 떨어졌는 추측도 있는데요.

한 전문가는 “개인 행복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공무원 생활이 자기만족도가 높은 삶을 영유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청년들이 많다”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코로나19의 영향과 함께 공직에 대한 회의가 겹치며 노량진을 찾는 공시생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요.
노량진 고시촌이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게 될지 아니면 노량진 뉴타운 재개발 사업과 함께 새로운 상권으로 변모할 지 귀추가 주목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