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가 타고나..” 맨하튼에서 악세살이 팔던 80년대 여가수. 200억 대박난 최근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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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라고 하면 아직까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템이 부동산인데요.

시드머니가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시세차익도 크게 노릴 수 있죠. 부동산이야말로 재테크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예인들같은 경우, N년만에 시세차익으로 몇십억을 벌었다더라 하는 스토리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찾아볼 수 있죠.

아무리 그래도 단 돈 700만원으로 그것도 20대의 나이에 집을 샀다는 스토리를 들으면 당연히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요.

그도 그럴것이, 700만원이라고 하면 어지간한 서울 원룸 1년치 방세를 충족하기에도 빠듯한 수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왕년에 잘나갔던 연예인이 일찌감치 투자에 대한 도전을 한 덕분에 700만원으로 재테크를 시작한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가수 방미의 최근 근황이 알려지면서 한국이 아닌 해외 부동산 투자로 재벌이 된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함께 주목을 받았습니다.

방미의 근황이 알려진 방송은 MBC 다큐멘터리 ‘사람이 좋다’였는데요. 그녀는 제주도에 세컨하우스를 마련해 노후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인기 절정의 순간에 연예계를 떠나면서 한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사람들은 이제까지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죠.

방미는 방송에서 근황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살아왔던 스토리도 공개했는데요. 놀랍게도 투자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산만 200억이 넘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가수이기도 한데요.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연예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대신 개그를 통해 커리어를 이어나가지는 않고 가수로 금방 전향을 했는데요. 전향하자마자 히트곡을 속속 발표하면서 성공을 했습니다.

방미는 이때부터 사업을 염두에 두고 미국 진출을 계획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인터뷰에서도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83년 LA 공연을 다녀온 뒤로 비즈니스를 통한 해외 진출을 꿈꿔왔다고 하죠.

물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에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면도 있지만, 그녀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이 얼마 없었기 때문인데요.

방미는 미국으로 떠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단 한국 부동산 투자부터 시작했습니다.

18세에 데뷔한 그녀는 방송생활을 하면서도 야간업소까지 투잡 생활을 해왔는데요. 무명 MC를 하면서 700만원을 모은 순간부터 부동산 투자를 해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처음 매입한 아파트가 바로 방배동에 있는 궁전아파트였죠. 당시 아파트 매입가는 25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궁전아파트를 시작으로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모으기 시작한 그녀는 무려 30번이 넘게 이사를 다녔다고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강남은 물론이고 용산과 제주도까지, 뜬다 하는 지역들은 모두 방미의 타겟이 되었습니다. 한창 아파트 붐이 일어나던 80년대에 재테크 아이템을 아주 제대로 잡은 셈이죠.

연예계를 은퇴하고 부동산 투자에만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방미는 드디어 한남동의 고급 주택단지인 유엔빌리지에 입성했는데요. 유엔빌리지에 입성하던 당시에 200억이라는 자산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는 2007년, 한국에서 충분히 돈을 모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국행을 결정했죠.

83년에 미국 진출을 꿈꾸기 시작해서 24년 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인데요. 미국에서는 부동산이 아닌 쥬얼리 사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8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쥬얼리 사업을 하면서 방미는 맨해튼 부동산 투자에 대한 가능성을 엿봤는데요.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미국 부동산 투자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죠.

방미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매입한 곳은 도널드 트럼프가 가지고 있던 트럼프 플레이스였는데요. 32만 달러에 부동산을 매입해 60만 달러에 매각해 시세차익을 남겼습니다.

한국에서 그녀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아파트 붐이었다면, 미국에서 기회를 준 것은 다름아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는데요.

경제위기로 인해 시장에 나온 급처분 매물들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6개월도 되지 않아 시세가 90% 이상 회복되었고, 1년 뒤에는 오히려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보다 시세가 오르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한국에서 부동산 규제가 심해지기 전에 자금을 모아 해외에서 계속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려나간 셈이죠.

여전히 독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방미는 ‘이제 돈을 모을만큼 모았으니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고싶다’고 밝혔는데요.

투자에 대한 선견지명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남다른 부를 축적한 만큼, 앞으로는 여유롭게 살아가는 일만 남지 않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