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가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여느 70대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출연자에 시청자들은 당연히 ‘뽕짝’ 연주를 기다렸는데요.

허나 흘러나온 노래는 모두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습니다.
“내가 미쳤어~”와 함께 시작된 할아버지의 노래에 관객과 시청자들도 함께 미칠 수밖에 없었는데요.
자신의 얼굴과 가슴께를 쓸어내리는 숨 막히는 춤선에 모두들 입을 다물 수 없었죠.
밀당하듯 엇박자의 노래자락에 요염하고 간드러진 춤사위까지 관객들은 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는데요.

방송 후 할아버지는 지병수라는 이름 대신 ‘할담비’라는 애칭을 얻었고,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됩니다.
며칠간 포털사이트 실검 1위를 찍고, 방송 장면은 500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데요.
가장 핫하다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해 각종 TV 방송에 출연하고 지역 행사장을 누비는 등 벼락스타가 되죠.
광고는 물론 심지어 유명 인사들만 나간다는 야구 경기 시구에도 나섭니다.

원곡자인 손담비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특별한 콜라보레이션도 선보이는데요.
유복한 집안의 막내에서 기초수급자로 그리고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할어버지로 ‘인생은 정말 모르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었죠.
지병수 할아버지는 만석꾼 부모를 둔 11남매의 막내였습니다.
막내만은 대학을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바람에 당시 전주 지역 명문이었던 전주북중에 입학하는데요.

사흘 내내 동내 잔치를 할 정도 부모님은 기뻐했지만 공부가 딱히 즐겁지는 않았다고 지병수 할아버지는 전하였죠.
춤이 좋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한양대 무역학과를 입학하는데요. 결국 졸업하지 못한 채 20대를 방황한 그는 형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 입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6년 만에 뛰쳐나오면서 이후 옷장사부터 술장사까지 여러 직업을 전전하죠.
그러다 서른일곱 인생의 전환점이 될 인물을 만나는데요.

승무 전수조교이자 살풀이 이수자인 임이조 선생을 만나며 춤의 세계로 빠져들게 됩니다.
2년 동안 학원에서 숙식하며 전통무용을 배우는데요. 그간 하고 싶었던 춤을 마음껏 출 수 있었던 당시가 더없이 즐거웠다고 전하였죠.
그렇게 춤에 빠져있던 그는 일본 나고야 업소들에 나갈 무용팀에 선발되는 행운도 맞게 됩니다.
남다른 춤선에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그를 찾는 발걸음도 늘어나는데요.

한 달에 800달러를 받는 일반 단원과 달리 그는 1400달러를 받을 정도로 무용수로서 상당한 명성도 쌓죠.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도 살 정도로 돈도 넝쿨째 들어옵니다. 하지만 마흔 넘어 찾아온 인생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데요.
만석꾼이었던 부모님의 재산은 조금씩 사라져 갔고 유산은 막내아들 몫까지 돌아오지 않았죠.
공연을 하며 번 돈은 3번의 사기와 잘못된 보증으로 거의 날아가는데요.

결국 홀연 단신 70대에게 남은 건 기초생활수급자가 다 였습니다.
재산도 가족도 없지만 그의 마음속엔 여전히 ‘춤’이 남아 있었는데요. 그리고 2019년 ‘할담비’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죠.
‘전국노래자랑’에서 알게 된 한 완구점 사장님이 자청해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등 따뜻한 인정도 이어졌는데요.
일주일에 100건이 넘는 섭외 요청에 광고 활동까지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평생을 미혼으로 살았다는 지병수 할아버지는 두 명의 양아들을 두고 있는데요.
아버지의 빡빡한 스케줄을 걱정하는 양아들의 모습에서 굴곡진 그의 인생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부잣집 막내에서 기초수급자 그리고 벼락스타까지 그를 보며 인생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는데요.
인생은 모르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신나게 해보라는 지병수 할아버지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