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26, 2024

14살에 수세미팔던 ‘개그우먼’ 나이트하다 말아먹고.. 일당 7만원짜리 “시체 닦기 알바로 먹고 산다는 최근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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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사람에게 있어서 먹고 사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이죠.

오죽하면 자존심까지 다 접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까지 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얼굴과 이름이 남들에게 팔린 유명인이 다른 일을 하는건 쉽지 않은데요.

사업을 벌이는 게 아니라 생계유지가 어려워 직업을 바꾸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 이목이 집중되게 마련이죠.

기사까지 나면서 좋지도 않은 상황이 널리 알려져 곤란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요. 그만큼 프라이버시도 지켜지지 않고 자존심도 상하게 되겠죠.

현실이 이렇다보니 생계가 어려운데도 다른 일을 선뜻 하지 못해 생활고를 겪었다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은데요.

최근 한 연예인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시체닦이 알바’까지 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았습니다. 연예인이고 뭐고 일단 누구라도 선뜻 하기 힘든 일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심지어 사연의 주인공이 한 때는 개그계를 주름잡았던 사람이라 그만큼 사람들의 놀라움도 컸는데요.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와 더불어 뜻밖의 근황을 함께 전한 사람은 바로 개그우먼 이경애였습니다.

이경애는 한 번 슬럼프에 빠진 뒤로 굉장히 긴 시간 방송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는데요. 그렇게 활동을 쉬는 동안에 굉장히 많은 일을 해왔던 것이었습니다.

이경애는 데뷔 전부터도 범상치 않은 가정사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원래 그의 꿈은 개그맨이 아닌 판사였다고 합니다.

판사를 지내고 사회 사업가까지 되려는 굉장히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지만 집이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조차 진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창 공부하고 친구와 놀 나이인 14살에 거리로 나가 수세미를 팔아 생계에 도움을 주어야만 했죠.

아버지는 음주와 노름에 빠져있었기에 가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요. 그 탓에 어머니 혼자 생활비를 벌면서 여섯 식구를 먹여 살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판사보다는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요. 1년을 쉬고 학교에 진학한 그는 졸업하고 20살이 되자마자 KBS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에 성공했습니다.

데뷔 후 이경애는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CF 한 편에만 3,000만원을 받을 정도로 잘 나가는 개그맨이었습니다.

유행어 하나로만 20개가 넘는 광고를 찍고 90년대에 한 달에만 1억이 넘는 돈을 벌었죠.

그렇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나이트 클럽 사업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실패하면서 순식간에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제까지 번 돈에 집까지 다 날릴 정도로 크게 손해를 보고 말았죠.

여기에 부모님의 병원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겹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애정전선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요. 1990년에 결혼해 이혼 경력이 있던 그는 1997년 12살 연상의 남편 김용선을 만나 2002년에 재혼을 하게 됩니다.

난임이었지만 인공수정으로 간신히 임신을 해서 딸까지 낳게 되었죠. 여기까지만 들으면 다시 행복을 찾은 것 같았는데요. 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남편인 김용선은 지극정성으로 이경애를 간호했는데요. 과거 간 이식을 받았던 그는 간호를 하면서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져 쓰러지게 됩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이경애는 재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는데요. 부모님에 남편까지 줄줄이 쓰러지는 바람에 몸에 마비가 올 정도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3년 이경애의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극심한 우울감에 빠진 이경애는 몇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딸을 위해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는데요. 이경애는 세차장부터 음식점, 시체닦는 알바까지 안해본 일이 없었죠.

특히나 시신을 닦는 일은 일당 7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보수를 주기에 더더욱 놓칠 수 없었는데요. 이경애는 ‘집안의 가장이 나다’라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다행히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사업가로 변신해 승승장구 중이라는 기쁜 소식도 있었는데요.

2012년부터 시작했던 어묵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2015년부터는 억대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흔한 홈쇼핑이나 광고도 하지 않고 맛으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에 매진했는데요.

덕분에 수제어묵 떡볶이 가게를 오픈해 지점까지 늘려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진8)

어릴 때부터 결혼을 하고 나서까지도 계속해서 힘든 일만 겪어왔지만 책임감을 놓지 않은 그였는데요.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만큼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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