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꿈꾸는 재벌의 삶. 이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서 옛날부터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바로 재벌인데요. 2019년 드라마를 분석한 결과 재벌이 등장한 드라마가 무려 18%로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부러워 하는 돈을 따로 안 벌어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을 안락한 삶을 다른 것을 위해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어 화제입니다.

상속받을 재산만 무려 4억 8천만 달러 우리 나라 돈으로 한화 5천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마무시한 재산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 진짜 최고의 걸크러쉬를 보여줬는데요. 그녀의 이름은 바로 안젤린 프라시스. 그녀의 아버지는 말레이시아의 투자회사 회장 쿠 카이펑으로 그녀는 재벌가의 딸인 셈인데요.

그녀는 2008년 영국 옥스퍼드 주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조촐한 결혼식을 치르게 되지만 세간의 주목에두 불구하고 결혼식의 하객은 300명이 불가 했습니다. 안젤린은 디자인과 경영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쿠 카이펑 회장은 일찍이 가장 유망한 안젤린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경영 수업을 시킨 것을 전해졌습니다.

그녀는 2001년 후계자 수업의 일환으로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2009년 영국 명문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도중 제드 프란시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금새 그 둘은 결혼을 약속하는데요. 하지만 쿠 카이펑은 크게 반대했습니다. 제드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쿠 카이펑은 심지어 결혼하려면 모든 유산을 포기하라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모두가 안젤린이 사랑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5000억원의 유산을 깨끗히 포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애인을 선택합니다.

다른 사람은 평생 손대보지도 못한 금액을 포기한 것에 대해 안젤린은 내게 주어졌던 막대한 부는 내게 많은 불행을 안겼기에 하나도 아쉽지 않다라며 덤덤하게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후 2015년에는 자신의 디자인 재능을 살려 브랜드를 창업하여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여름만 되면 더욱 인기가 많아지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베스킨라빈스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처음 시작한 버트 베스킨과 어빈 로빈스의 성을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이 중 어빈 로빈스의 아들인 존 라빈스는 삼촌인 베스킨이 50대 초반에 심장마비로 떠나고 아버지 역시 고혈압, 당뇨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는데요. 외아들이었던 그는 32번째 아이스크림을 만들라며 상속을 권유받게 됩니다.

베스킨 라빈스는 아시다시피 전 세계에 매장을 수천 곳이나 두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이며, 판매고는 무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회사입니다. 하지만 존 라빈스는 이를 단칼에 거절하고 상속을 포기하고 맙니다.

그는 놀랍게도 오히려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유제품과 축산물의 해악을 알리는 환경운동가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데요. 존 라빈스는 자신의 저서와 인터뷰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어린이들이 2초에 한명씩 굶주리는 것을 보고 32번째 맛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넓고 화려한 집 대신 부인과 함께 작은 섬으로 이주했고 한 칸짜리 통나무 집을 짓고 10년 동안 식품을 직접 키우며 사는 채식주의자로 변신합니다.

그는 수년 간 쓴 돈이 단 천달러, 우리 돈으로 약 100만원 정도 밖에 안되지만 재정적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원래 그의 집은 아이스크림콘 모양의 수영장을 가지고 있었고, 좋종 아이스크림으로 아침을 대신할 정도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라빈스 집안 사람들은 비만과 싸움을 벌여야 했으며, 삼촌, 아버지를 비롯한 자신도 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존 라빈스는 부유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좀 더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는 법을 배우는 길로 접어들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도 환경운동가, 책 저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섬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 오션 라빈스와 함께 채식 위주의 건강한 음식을 장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 역시 존의 권유로 채식주의자가 된 후 병을 완쾌했다고 하니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아이스크림 제국을 거부하고 그가 단단한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유명한 헐리웃 배우 중에서도 재벌가에서 나와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도 있었는데요. 대표적인 인물이 영화 소셜 네트워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유명한 배우 아미 해머입니다. 아미 해머는 유명한 석유 화학 재벌가 출신으로 증조부는 옥시덴탈 석유의 경영자로 유명한 아먼드 해머입니다. 옥시덴탈 석유는 미국 500대 기억 목록에서 200위 권에 올라와 있으며 지난해 매출이약 25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LA의 거대한 해머 뮤지엄도 아먼드 해머가 창립했는데요. 명문가에서 집안의 기대를 한 목에 받고 자란 해머는 청소년이 되면서 조심스럽게 배우의 꿈을 키우게 시작하는데요. 하지만 아들이 가업을 잇길 바랬던 해머의 부모님은 그의 결정에 크게 반대했고 배우의 꿈을 접을 수 없던 해머는 10살에 집안으로부터 독립해 배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집을 나간 후 경제적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은 그는 드라마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로 데뷔하였으며 가십걸, 위기의 주부들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아갑니다. 2010년 소셜 네트워크에서 쌍둥이 윙클보스 형제 역을 연기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같은 듯 다른 명문가 출신의 하버드생 두 형제를 1인 2역으로 훌륭히 소화해내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이후 론 레인저, 맨 프롬 엉클에서 큰 키에 훤칠한 외모는 물론 능청스럽고 섬세한 감정 연기까지 선보이며 많은 팬들을 확보합니다. 아미 해머의 키는 무려 197센치로 왠만한 농구선수만큼 큽니다. 재벌 4세로 재벌가의 삶을 포기했던 아미해머는 자신의 힘으로 행복한 배우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엄청난 재산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과 인생을 선택한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81세에 첫사랑과 결혼한 한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카이스트에 기부했다고 전해져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금액은 무려 676억원, 일반 사람이라면 평생 구경도 못할 정도의 엄청난 재산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정체는 바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인데요. 알고 보니, 이 회장이 카이스트에 기부금을 낸 것은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그녀는 2012년 약 80억원의 미국 부동산을 그리고 4년 뒤 10억원의 미국 부동산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 약정한 금애까지 총 766억원이라고 하니 진정한 여걸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녀는 경기여고, 서울대 법대 출신의 소위사람들이 말하는 엘리트입니다. 하지만 모교도 아닌 카이스트에 이렇게 많은 금액을 기부한 이유는, 미래는 과학기술 발전에 달려있고 한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기관이 카이스트이다라고 기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국내 GDP의 16%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석 박사 연구인력의 25%가 카이스트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법조인 대신 기자로 서울 경제신문에서 일했지만 1980년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폐합 때 강제 해직되는 불행을 겪습니다. 그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농장 일과 사업을 벌였는데요.

부모님이 결혼 비용으로 남긴 50만원짜리 적금 통장 두개를 밑천 삼아 돼지 두 마리로 목장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1000마리로 늘어나 전국에 소개될 만큼 주목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 뒤에는 모래 채취 사업, 부동산 사업으로 확장하며 본격적으로 부를 일궜습니다. 덕분에 미국 연방정부가 세들어 살고 있는 빌딩의 건물주가 되는 엄청난 부를 쌓았는데요. 이후 이 회장은 이 건물을 카이스트에 유증하며 처음으로 카이스트와 인연을 맺습니다.

장학사업으로 제 2의 인생을 사고 있는 그녀는 80년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2년 전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자 첫사랑이었던 현재의 남편과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재력가인 그녀의 기부에 반대할만도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이왕 마음 먹은거 발리 하라며 독려했다고 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꿈꾸는 돈 많은 재벌의 삶.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금수저를 내려놓고 엄청난 돈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신념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한 이들을 항상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