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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une 23, 2021

인테리어에만 무려.. 집값 90억 만큼 썼다는 지디의 자산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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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CNN에서 서울이 세계 최고의 도시인 이유를 두고 50가지를 뽑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 안에는 메인 디시보다 많은 밑반찬, 세계 최고의 공항, 빵빵한 인터넷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유 중 하나에 GD가 들어가 있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GD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자 패셔니스타이긴 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더군다나 50가지 이유 중에 사람 이름이 써져 있는 건 GD가 유일했습니다.

연예인 중에 연예인, 연예인들의 연예인 중의 연예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중심에 바로 GD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을 한 것도 GD 본인이었는데요. 연예인이라는 단어의 뜻을 풀어보면 재주를 펼쳐 보이는 사람을 가리키는데요.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GD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인생 자체가 셀럽을 하려고 태어난 운명이 아닌가 싶은데요. 지디는 88년 8월 18일 용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권지용 이런 출생의 배경은 이후 그가 아시아권에서 큰돈을 벌게 해준 중화권에서 좋아하는 소스가 되기도 합니다. 생일은 중국인들이 환장한다는 8자로 이루어져 있고 심지어 이름에는 한자로 떡하니 용이 들어가 있으니 그가 중국 문화권에서 훨씬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이런 그의 출생 배경도 한몫했습니다.

얼핏 보면 뼛속까지 재능으로 뭉쳐있어 노력 없이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온 것 같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다른 아이들이 집에서 뽀뽀뽀를 보고 있을 때 뽀뽀뽀에 출연해 자신의 끼를 선보입니다. 뽀뽀뽀에 출연한 아이들 중에서 단연 끼가 가장 돋보였다고 하는데요.

그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룰라의 기획사에 눈에 띄어 꼬마 룰라의 멤버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성 그룹이었던 꼬마 룰라는 그가 8살 때 해체되고 마는데요. 어린 마음에 자신의 속한 그룹의 해체를 겪게 되자 그는 잠시 꿈을 내려놓고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하고 학원을 다니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우연히 가족끼리 놀러 간 스키장에서 때마침 댄스대회가 열리게 되는데요. 그는 여기에 참가해 당연하게도 1등을 거머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사회를 보던 중년의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요. 그는 바로 연예 기획사를 준비하고 있고 바로 현재 SM의 이수만 대표였습니다.

이날 사회자로 참석한 이수만 씨는 지디를 보고 자신의 기획사 연습생으로 올 것을 제안하게 되어 지디는 이때부터 한동안 SM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습생에서부터 데뷔까지 체계나 시스템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고 춤을 제외한 지디의 외모나 노래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SM의 주력 연습생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디는 연습실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지디는 일생일대로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우연히 들은 우탱 클랜의 음악 덕분이었습니다. 우탱클랜의 음악을 듣고 충격에 빠진 당시 10살이었던 지디는 이때부터 힙합에 푹 빠지게 됩니다.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랩을 배우는 학원에 가서 랩을 배우고 자기만의 랩 메이킹 노트를 만들어 틈날 때마다 가사를 쓰는 연습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3년 후 대한민국 가요계에도 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요. 지디는 1999 대한민국이라는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에 이어 2001 대한민국 힙합 플렉스 앨범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우리나라 최고의 힙합 크루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기획사 대표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가 바로 YG 대표 양현석이었는데요. 그렇게 지디는 SM을 떠나 YG의 연습생을 다시 시작합니다.

하지만 SM과 똑같이 YG에서도 지디를 처음부터 밀어준 것은 아니었는데요. 당시 YG는 지누션과 원타임, 렉시 등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대형 기획사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였습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연습생임에도 불구하고 지디는 연습보다도 잡일을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배달 세팅 및 음식 준비, 물 배달과 연습실 청소를 일 년 동안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데요.

이때 함께 고생한 멤버가 바로 태양입니다. 이 둘은 잡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연습을 해 나가면서 지누션 같은 힙합 듀오가 되는 것을 꿈꿨는데요. 그러다 어느 날 지디와 태양은 자신들이 향후 YG에서 만들 아이돌 그룹의 멤버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다른 연습생 같았으면 좋아했을 테지만 이 둘은 줄곧 힙합 크루만을 목표로 연습해 왔기 때문에 이에 극렬히 반대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오케이를 하게 되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2006년 빅뱅으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쉽게 현재의 위치까지 오른줄 알았는데 실상은 SM에서 5년, YG에서 6년이라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습생으로 활동하며 엄청난 시간이 있었던 것인데요.

빅뱅은 YG의 히트메이커 테디와 지디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체적인 기획에 함께 참여하며 엄청난 성공을 이끌게 되는데요. 한때 YG 총매출의 80%까지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빅뱅 멤버들의 군 입대 자체가 YG 최대 리스크로 평가받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빅뱅 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바로 지디였는데요. 랩은 수준급인데다가 춤 역시 빅뱅 내에서 가장 춤선이 좋다고 평가를 받았으며 작곡 작사 능력까지 가수로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패션 센스까지 뛰어났는데요. 그의 패션 센스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권을 흔들어 놓으며 지디가 입으면 트렌드가 된다는 말 자체가 현실이 되었는데요.

지방시를 입으면 지방시가 뜨고 비츠 헤드폰을 끼면 비츠가 뜨고 크롬하츠뿐만 아니라 특히 톰 브라운의 경우 한국 매출의 반은 GD 때문에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는데요.

거기에 그다지 인기가 없었음에도 지디의 했다 하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까지 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MCM입니다. MCM 같은 경우 GD가 입고 쓰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힙한 이미지의 브랜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디가 공항에서 이 가방을 떡 메고 나타나자마자 MCM 가방은 세상에서 가장 힙한 가방으로 탈바꿈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MCM은 지디에게 모든 걸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재킷에서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지디가 매장을 방문하면 MCM 회장이 직접 와서 만나기까지 했다고 하니 지디 자체가 주는 파워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결과 MCM은 특히 중화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면세점에서 서서 들어야 되는 브랜드로 크게 성장합니다.

또한 한때 지디가 조던을 엄청 신었는데 지디가 신은 조던은 리셀가가 폭발해 버렸습니다. 한 예로 조던 6 오레오 컬러로 불리는 이 모델은 한때 인기가 너무 없어 상설 매장에서도 살 수 있는 모델이었는데 지디가 이 신발은 신은 사진이 공개되자 중고 가격은 40만 원까지 치솟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 세계 수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되는데요. 심지어 한국어를 쓴 손 편지를 보내기까지 합니다. 지디는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디올 옴므, 생로랑을 거쳐 현재 셀린느를 책임지고 있는 에디 슬리먼은 자주 지디에게 선물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패션에 대한 관심과 그의 창작혼을 담아 페인트 등을 이용해 직접 커스텀을 해서 입고 다니다가 자신의 패션 브랜드 피스 마이너스 원을 론칭합니다. 피스 마이너스 원의 로고도 굉장히 감각적인데요. 피스를 상징하는 심벌에 작대기 하나를 뺀 것인데요. 요즘 더 자주 사용되는 이 로고 또한 평화가 꽃말인 데이지에 꽃 잎 하나를 뺀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지디가 만들고 지디가 입는 이 브랜드는 크게 화제가 되어 엄청난 인기를 끄는데요. 파리를 대표하는 편집숍인 콜레트, 런던을 대표하는 편집숍인 도버 스트릿 마켓 등과도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나이키로부터 협업 제한을 받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디 포스인데요. 얼핏 보면 그냥 기존의 평범한 포스 같지만 신으면 신을수록 외피가 벗겨지면서 속 안에 페인트칠이 나타나는 엄청난 아이디어까지 들어가 리셀가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럼 지디의 현재 자산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는 지금까지 가수 활동, 저작권료, 광고 수익 그리고 사업 수익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먼저 빅뱅 활동 당시 매년 천억의 수익이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소속사와 다른 멤버들 수익을 제외했을 때 연간 50억 원 정도를 벌어들였습니다. 빅뱅이 왕성히 활동한 시기가 대력 3~4년 정도이기 때문에 빅뱅 활동으로 200억에 가까운 수익을 만들어 냈습니다.

여기에 빅뱅 대부분 히트곡이 지디에서 나와 거짓말, 마지막 인사, 붉은 노을, 하루하루 등의 작사까지 직접 해 2018년 올해의 저작권 대상 작사가 부분을 수상, 저작권료 수입만 연간 10억이 넘습니다.

지디는 1년에 한두 편 광고를 찍는 흥행성과 희소성을 모두 갖춘 셀럽이었는데요. 입대 전 찍은 광고가 샤넬이었으며 입대 후 나이키 광고를 찍었습니다.

지디 광고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중국 생수 회사 광고인데요. 현재 워런 버핏을 제치고 세계 부자 순위 6위에 올라선 중샨샨이 자신의 기업 농부 산천을 홍공 증시 상장 전 당시 GD를 광고 모델로 섭외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사드 문제로 중국 전체에서 금한령을 내려 중국 내 한국 연예인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는데요. 그런데 금한령 이후 첫 한국인 광고 모델이 바로 지디였습니다.

지디가 광고 모델로 나온 농부 산천 차 브랜드 차파이는 나오자마자 하루에 100만 병씩 팔리는 기염을 토합니다. 엄청난 광고 파워를 보여준 지디는 이 광고로 최소 수십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만든 자신의 패션 브랜드 피스 마이너스 원 또한 출시했다 하면 품절이 되고 있으며 특히 나이키와의 콜라보 이후 더욱더 인기가 높아져 최근에는 리셀이 붙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는데요. 참고로 이 브랜드의 CEO는 지디의 누나 권다미라고 합니다. 사업 수익까지 합쳐진 그의 총자산은 대략 600억 원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연예인과 비슷하게 지디 또한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인데요.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나인원 한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 중 하나이며 당시 분양가에 대한 제한을 우회하려는 수단으로 일반 분양이 아닌 4년 임대 4년 후 분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입주했다는데요.

지디는 여기의 펜트하우스에 거주 중이며 참고로 펜트하우스의 임대 보증금은 약 50억 원에서 월세 250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이후 분양할 경우 분양가는 대략 90억 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그는 2017년 입대 전 청담동에 한 빌딩을 매입하는데요. 대지 면적이 대략 100평에 달하는 이 건물을 88억 원으로 이 전 주인은 40억 가량에 매입한 후 재건축 후 지디에게 판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강 밤섬 자이를 13억 원에 구입해 가지고 있고 경기도에 돌체 비타 펜션을 10억 원에 구입해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술품을 사랑하는 탑의 영향을 받아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하다 보니 소유한 미술품 가치만 해도 50억이 넘는데요. 그는 나오키 토미타가 그린 빅뱅 그림부터 팝 아트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와 조지콘도, 가구 디자이너 쟝 로이에와 샬로트 페리앙 등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집 안에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소유한 차량도 화제인데요. 예전부터 벤틀리 컨티넨탈 GT,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롤스로이스 고스트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알려진 이 차량 세 대의 가격만 합쳐도 20억이 가깝습니다. 곧 컴백할 것으로 알려진 지디, 그의 놀라운 자산만큼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되는데요. 지디가 만들어갈 새로운 트렌드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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