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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anuary 26, 2022

들으면 바로 알지만 한순간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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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카톡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소식을 전하는데요.

30~40대 분들에게 소중한 추억 창고라고 할 수 있는 ‘라테 SNS’가 있죠. 바로 싸이월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싸이월드의 과거는 그야말로 화려했죠.

블로그형 SNS의 원조격으로 3200만 회원을 갖춘 싸이월드 안에는 지금도 우리네 흑역사를 간직한 170억 장의 사진과 1억 5000만 개의 동영상이 잠자고 있는데요.

미니홈피를 통해 ‘일촌’ ‘파도타기’ ‘방명록’ 작성 등 지금의 SNS와 유사한 형태의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자신만의 ‘미니미'(아바타) ‘미니룸'(가상공간)을 꾸미거나 배경음악을 설정하는 등 이용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민 SNS로 불렸습니다.

그때 그 시절 ‘도토리’를 모아 친구에게 배경음악을 선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요.

2001년 세계 최초로 아바타 유로 서비스를 시작하며 붐을 일으킨 싸이월드는 2003년 회원 수 2000만 명을 돌파하였고, 2001년에는 매출액이 100억 원을 넘기며 지속적으로 성장하죠.

하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며 인기가 가파르게 하락하는데요.

최고의 인기를 구사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디지털 환경이 PC에서 모바일로 급속도로 바뀌면서 싸이월드도 아이러브스쿨도 버디버디도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 인생에도 흥망성쇠가 있듯 기업 또한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경우가 많은 것이죠.

한때, 컴퓨터 업계 3대장이라 불리며 급성장했던 세진컴퓨터랜드도 지금은 사라져버린 기업인데요. 1990년대 우리나라에 컴퓨터의 보급이 늘어나며 당시 국내 컴퓨터 유통 시장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죠.

불친절한 것은 물론 정보의 불투명성으로 고객을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 한 상황 속에 세진컴퓨터랜드의 등장은 획기적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91년 부산 서면의 지하상가에 컴퓨터 매장을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한상수 대표는 1992년 컴퓨터 종합 유통 업체인 세진컴퓨터랜드를 설립하죠.

이후 서울, 부산, 경기, 대구, 울산 등 전국 곳곳에 백화점식 컴퓨터 매장을 연이어 오픈하며 업계에 충격을 주었는데요. 크고 깔끔한 매장뿐만 아니라 철저한 친절 교육을 받은 직원들은 이전 컴퓨터 매장에서 볼 수 없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시연용 제품을 다수 배치하고 호객행위도 일절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모든 제품에 정찰제를 도입해 바가지와 같은 병폐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죠.

공격적인 마케팅까지 더해져 창업 4년 만에 매출액이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에 이어 국내 3위를 차지할게 됩니다.

하지만 매장 확대와 홍보 마케팅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돈을 빌려 매장을 열거나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와 매출을 올리는 방법으로 사업을 지속하였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죠.

또한 창업자의 저돌적인 추진력 또한 문제가 되어 마치 군대를 방불케하는 강압적인 직원 교육, 권위적인 기업 운영 방침으로 직원들의 불만은 커지게 되는데요.

불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1997년 말 대우 통신에 인수되었으나, IMF로 대우그룹의 입지가 흔들리자 부도를 내고 파산 선고에까지 하게 됩니다.

당시 세진의 자산 규모는 784억 원인데 비해 부채는 4800억 원에 이르며 빚이 6배나 많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죠.

한때 삼성, LG와 함께 피처폰 3인방으로 불리며 국내 핸드폰 시장을 주름 잡았던 팬택 또한 국내에서 종적을 감췄는데요.

대한민국 1세대 통신 벤처 기업 중 하나인 팬택은 ‘SKY 폰’으로 더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팬택은 한때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삐삐와 스마트폰의 전신이 피처폰으로 국내 시장을 장악했었죠.

1991년 직원 6명과 함께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시작한 박병엽 대표는 무선 호출기, 산업용 무전기 등을 자체 개발하며 내수는 물론 수출 시장에서도 큰 활약을 했었습니다.

보유한 특허만 약 4000건이고, 1만 3000여 건이 출원 중일 정도로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기업이었는데요.

이러한 기술로 IMF 위기도 넘기며 꾸준히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갔고 2002년에는 현대큐리텔, 2005년에는 스카이 텔레텍을 인수·합병하며 몸집을 키워나갑니다.

국내 최초 33만 화소 카메라 폰, 슬라이드 방식 휴대폰 등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두꺼운 소비층을 만들어 내는데요.

거기에 세계 최초 지문인식 폰도 개발하며 연속 호재를 터트려 2005년엔 연 매출 3조 원, 세계 핸드폰 업계 순위 7위까지 오르게 되죠.

하지만 ‘모토로라 레이전 폰’이라는 거대 라이벌의 등장과 스마트폰으로 세대교체가 시작되면서 팬택은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2006년 워크아웃을 요청하였고 당시 채무가 무려 1조 5000억 원에 달했다고 하죠.

이후 다시 부활을 꿈꾸며 2010년 베가, 베가 X, 베가레이서 등 경쟁력을 갖춘 스마트폰을 선보였고 한때 LG전자를 제치고 스마트폰 점유율 2위까지 오르게 되는데요.

그러나 자금력이 약하다 보니 단통법 등 정부의 규제에 대처가 힘들었고 2014년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합니다.

2017년에는 스마트폰이 아닌 loT 사업에 올인했지만, 같은 해 10월 주식 전량을 케이앤에이홀딩스에 넘기며 회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죠.

한때 우리나라를 풍미했던 제품과 서비스들이 사라진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앞서는데요.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도 결국은 무분별한 성장과 시대착오적 경영에 소리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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