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7, 2024

배달 왜 이렇게 늦나? 한소리 하러 나갔는데.. 프로레슬러 박치기왕이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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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커트 앵글, 더 락’ 2000년대 초 초등학생들이 줄줄 외는 외국인 이름들이었죠. 바로 미국 프로레슬링(WWE) 선수들인데요.

지금은 TV 방송에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당시 프로레슬링은 초등학생들 사이에 야구, 축구를 능가하는 인기 스포츠였습니다.

반 아이들 40명 중 30명은 WWE 경기를 즐겨보고 선수들 이름은 물론 선수들이 즐겨 쓰는 기술까지 외울 정도로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대단했는데요.

2003년 서울에서 열린 WWE 선수들의 방한 경기는 입장권 1만여 장이 단 하루 만에 매진됐을 정도로 프로레슬링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프로레슬링 열풍의 원조는 1970년 온 국민을 흑백 TV 앞에 옹기종기 모이게 했던 ‘박치기왕’ 김일이 그 시작이었죠.

196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일약 국민스타로 떠오른 김일은 모두가 힘들던 시절 박치기 한방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스포츠 영웅인데요.

김일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프로레슬러의 계보는 이왕표를 이어 ‘새로운 박치기왕’ 노지심까지 이어집니다.

2006년 WWA 극동 헤비급 챔피언에 빛나는 노지심은 김일 선수의 마지막 후계자로도 유명하죠. 뛰어난 실력으로 프로레슬링계를 휩쓸었던 그는 영화에도 출연하며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도 합니다.

2001년 ‘천사몽’, 2004년에는 ‘클레멘타인’에 출연해 개성 있는 역할로 사랑받은 바 있는데요. 그런 그가 최근 지방의 한 치킨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근황을 전해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죠.

지난 2일 MBN ‘특종세상’에서는 ‘박치기왕’ 노지심의 최근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올해 63세인 노지심은 이제 어느덧 노년의 길로 접어들었는데요. 링을 떠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노지심은 아직도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는 뜻밖의 근황을 전하는데요. 과거 엄청난 인기를 구사했던 노지심을 다시 만 곳은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한 치킨집이었습니다.

노지심은 최근 운영하던 체육관이 문을 닫은 이후 알바를 하며 지내는 중이었는데요. 그는 2년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지만 아르바이트가 쉽지만은 않다고 말하는데요. 그는 “운동 근육이 따로 있다”라며 “운동만 했던 사람이 다른 걸 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드냐. 처음엔 일을 하다 경련이 난 적도 있다”라고 털어놓았죠.

노지심은 “옛날엔 방송도 많이 나가고 광고도 많다 보니 부러운 게 하나도 없었다”라고 떠올렸는데요.

남부럽지 않은 전성기를 누렸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치킨 배달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며 한탄해 하였죠.

그는 “옛날에 한창 잘나갔을 때는 강남에 빌딩 한 채는 가지고 있을 정도는 됐다”라고 전하는데요.

이어 “맞아서 번 돈을 다 날렸다. 사업에 융통성이 없었고 귀가 얇아 실패를 했다”라며 치킨집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백하였습니다.

프로레슬링이 비인기 종목이 되면서 노지심은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되는데요. 이후 겨우 체육관을 열긴 했지만 코로나19 타격을 피할 수 없었죠.

그럼에도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는 “사회에 나가는 초년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라며 “자존심을 집에 놓고 나가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라고 전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30년 전 이혼한 노지심은 양평에서 홀로 지내는데요. 운동을 싫어했던 아내와 결국 이혼을 결정하였고 30대 젊은 나이에 딸 셋을 홀로 키워내죠.

노지심은 특히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는데요. 급식이 나오지 않던 시절 자신이 싸준 도시락을 들고 갈 수밖에 없었던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전해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60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는데요. 오는 10월 은퇴경기를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일의 기념관을 찾았는데요. 사각 링에서 오뚝이처럼 일어나 싸우는 선수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며 다시 태어나도 운동을 하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죠.

이어 이왕표의 봉안당을 찾기도 하는데요. 이영표가 담도암으로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 병상을 지켰을 정도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파트너였습니다.

그는 “10월에 은퇴 경기를 하려 한다”라며 “형님이 힘을 실어달라. 보고 싶다”라고 그리움을 표하며 눈시울을 붉혔죠.

프로레슬링의 부흥을 다시 이끌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예순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는데요. 언젠가는 노지심의 박치기를 잇는 제자들을 TV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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