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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27, 2021

“죽으러 홍콩갔죠..” 백종원 과거 빚만 17억으로 폭망한 사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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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은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본가, 빽다방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요식 사업가이죠.

예능 ‘집밥 백선생’,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는 물론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비책’ 등 특유의 친근한 말투와 쉽고 재밌는 설명으로 ‘요알못’들을 요리의 세계로 빠지게 해주며 방송인으로써의 뛰어난 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백종원과 술, 그리고 사람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백스피릿’이 오는 10월 1일 첫 선을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한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매회 다른 우리나라 술을 테마로 미처 몰랐던 술에 대한 모든 것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라고 합니다.

그는 얼마 전 KBS 육아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요리 금손 아빠의 다정함을 뽐내기도 했죠.

하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트리며 승승장구하는 백종원도 과거에 사업이 크게 망하며 삶을 마감하려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백종원은 만석꾼이었던 증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영향인지 어릴 적부터 사업수단이 뛰어났다고 하는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음료수 병을 보고 ‘저게 돈이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해 학교 리어카를 빌려 공병을 모아 고물상에 갖다 팔며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장사꾼의 기질은 고등학교 졸업 전 친구 형이 하는 중고차 장사에 호객 아르바이트로 이어졌는데요.

손님을 불러와도 딜러들이 손님들의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해 손님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자 답답한 마음에 직접 딜러에 나섰다고 합니다.

딜러로 일하기 시작한 지 40분 만에 차를 파는데 성공한 것은 물론 며칠만에 차를 6대나 팔았다고 하니 정말 장사의 신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모르고 미터기가 조작된 차를 팔았고 이를 알게 된 손님이 찾아와 백종원의 뺨을 때리는 일이 생기자 딜러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장사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깨달았고 백종원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포석이 되는 사건이 되었는데요.

이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재학 중 아르바이트 삼아 일한 압구정동 호프집을 1달 만에 인수하게 되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상권을 파악한 그는 주변에 치킨 가게가 없으니 배달이나 포장을 해보자고 주인 할머니에게 제안을 하고, 직접 만든 전단지를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파트 단지에 돌렸다고 합니다.

전단지를 돌리자마자 주문 전화가 폭주해 ‘이 맛에 장사를 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하는데요.

호프집은 대박을 쳤지만 건강이 안 좋아진 주인 할머니는 백종원에게 가게를 인수해 보길 제안하고 당시 돈이 없어 망설이는 그에게 잔금은 장사하며 갚으라고 하죠.

가게를 넘겨받은 후 잔금까지 모두 갚고 3년 만에 가게 3개를 운영하며 15억 대의 자산가가 되는데요.

백종원이 나이트클럽을 인수하려던 것을 알게 된 가족이 반대하는 바람에 이후 육군 학사 14기 포병 장교로 임관을 하게 되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입대 후 ‘자정 이후 유흥업소 영업금지 방침’이 떨어져 호프집의 가치가 떨어져 싼값에 처분하였고 남은 돈을 주식에 몰아넣었지만 회사가 부도가 나며 휴지 조각이 되었다고 합니다.

임관 후 포병여단에 근무할 당시 간부 식당의 음식이 입에 너무 맞지 않아 자기 임무는 팽개치고 취사반에 직접 가 일을 했다고 하죠.

이에 참모장교에게 혼이 나기도 했지만 백종원이 한 밥이 시찰 나온 여단장 입맛에 딱 맞았고 결국 간부식당 관리 장교로 보직이 변경되었다고 하네요.

허나 당시 간부 식당에 일하는 병사들은 사회에서 요리를 하다 온 사람들이었고 백종원이 취사 일에 관여하면 무시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이에 몰래 칼질을 연습하는 것은 물론 메뉴 공부도 열심해 취사병을 휘어잡고, 이 과정에서 요리 실력과 식당 운영 요령도 깨우쳤다고 하죠.

외박도 나가지 않을 만큼 많은 애정을 쏟아부은 결과 미식가였던 장군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1년 더 복무해 보라는 제안도 받았다고 합니다.

1993년 전역 후 원조 쌈밥집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요식업에 뛰어들었고 1994년 더본 코리아를 설립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당시 백종원은 목조 주택 사업에 더 큰 꿈을 품고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주력하던 목조주택 사업은 IMF 외환위기 여파로 쫄딱 망하며 완전히 접어야 했고 수중에는 17억 원의 빚과 원조 쌈밥집만 남았다고 합니다.

좌절한 백종원은 결국 인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을 맞이하러 홍콩으로 떠나게 되는데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눈에 들어오는 식당에 들어가 한 식사에서 사업 아이템을 떠올리게 되어 귀국을 결심하죠.

귀국 후 채권자들을 모아 ‘기회를 주면 식당을 해서 모두 갚겠다’라고 말했고 그의 의지를 알아본 채권자들이 기회를 주어 사업에 전념하게 됩니다.

원조 쌈밥집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1998년 한신포차를 비롯해 본가, 새마을 식당 등 손대는 아이템마다 대박을 치며 빚을 모두 청산하게 되죠.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 당시 ‘소유진 남편 백종원’으로 시작하여 연예대상 대상 후보에 거론될 만큼 방송인으로나 사업가로써 엄청난 성공을 하였는데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리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장사와 관련된 요령, 마인드 등을 전수하는 등 요식 사업가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가맹점에 대해서도 로열티 감면이나 식자재 공급가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하죠.

앞으로도 여러 방면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송인이자 사업자로서 그의 활약이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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